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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집만 한 방에서 시작된 기적: 여백서원 이야기

    소박한 꿈, 위대한 여백: 여백서원 건립의 시작**

    ‘개집만 한 방’이라는 작은 소망에서 시작된 여백서원 건립 과정

    전영애 선생님은 처음부터 웅장한 서원을 꿈꾼 것이 아니었습니다. 단지 자신만의 작은 글쓰기 공간, “개집만 한 방”을 갖는 것이 선생님의 소박한 꿈이었습니다. 요즘 원룸의 평수가 8평은 되어야 한다는 말에 비춰볼 때, 그 꿈은 얼마나 작고 소박했는지 알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 작은 꿈은 1200평의 땅을 마련하고, 그 땅을 나누어 서원을 짓겠다는 놀라운 결정으로 이어집니다. 학교 옆 작은 전세 아파트에서 20평 남짓한 공간에 살던 선생님은 전세금을 털어 1200평의 땅을 매입합니다. 미등기 주택이었기에 책장 한 쪽을 찢어 계약서를 쓸 만큼 어려운 상황이었지만, 선생님의 꿈은 흔들리지 않았습니다. 10년간의 빚더미에 시달리면서도, 선생님은 꼭 해야 하는 일이라면 주저하지 않는, 뜨거운 열정을 가진 분이었습니다. 이러한 선생님의 삶의 여정은 결국 숲 속에 자리 잡은 아름다운 여백서원이라는 결실을 맺게 됩니다.

    미등기 땅 매입과 10년간의 빚, 그리고 1200평 땅을 나누는 결정

    1200평의 땅을 매입하는 과정은 순탄치 않았습니다. 미등기 땅이었기에 250만원이라는 적은 금액에 덜컥 계약을 했지만, 그 땅의 실제 크기나 가치를 제대로 알지 못한 채였습니다. 험한 산비탈이었고, 평수조차 제대로 몰랐던 상황에서의 계약은 10년간의 빚더미를 안겨주었습니다. 빚에 짓눌린 10년 동안 선생님은 힘든 시간을 보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꿈을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결국 10년 만에 집을 짓게 되지만, 그 시작은 쉽지 않았습니다. 넓은 땅을 혼자 쓰는 것보다 여러 사람과 함께 쓰는 공간을 만들고자 하는 선생님의 따뜻한 마음은, 개인적인 공간보다는 공유의 공간을 만들겠다는 숭고한 결정으로 이어집니다. 이는 단순한 집 짓기가 아닌, 공동체를 위한 공간 건설이라는 선생님의 철학을 보여주는 중요한 부분입니다.

    세상에서 가장 작은 집 짓기: 2칸짜리 집 짓기의 어려움과 1년 7개월의 시간

    1200평의 땅을 얻었지만, 선생님은 먼저 자신을 위한 ‘세상에서 가장 작은 집’을 짓기로 마음먹습니다. 단 두 칸 뿐인 집이었지만, 그 건설 과정은 예상보다 훨씬 오래 걸렸습니다. 처음에는 두 주일이면 된다는 목수의 말과 달리, 1년 7개월이라는 시간이 소요된 것입니다. 목수는 선생님의 어려운 경제 사정을 알아차렸고, 그 긴 시간 동안 작업을 진행했습니다. 이 과정에서 선생님은 돈이 없다는 현실에 좌절하기도 하고, 미래에 대한 불안감에 휩싸이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꼭 해야 하는 일”이라는 확고한 신념과 주변 사람들의 도움으로 끈기 있게 집을 완성하게 됩니다. 이 2칸짜리 집은 초가삼간도 아닌, 선생님의 삶의 자취가 고스란히 담긴 소중한 공간이 되었습니다. 이 작은 집은 여백서원 건립의 발판이자, 선생님의 삶의 철학을 보여주는 상징적인 공간으로 자리매김합니다.

    책과 사람을 위한 공간: 여백서원의 다양한 공간들

    서재, 도서관(비블리오테크): 책으로 가득 찬 공간과 그 의미

    여백서원의 중심은 단연 서재와 도서관, 혹은 ‘아인 비블리오테크'(한 사람을 위한 도서관)라 불리는 공간입니다. 수많은 책들이 천장까지 빼곡히 채워져 있고, 그중에는 1854년 판 파우스트 초판본과 같은 희귀본들도 포함되어 있습니다. 단순히 책을 보관하는 공간을 넘어, 전영애 선생님의 삶과 연구의 역사가 고스란히 담긴 곳입니다. 30년 넘게 문학을 가르치고 연구하며 쌓아온 지식과 열정의 흔적들이 책장마다, 책 속에 새겨져 있습니다. 선생님은 이 서재를 통해 책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고, 마음에 드는 자리에 앉아 책을 읽는 여유를 누리며, 연구자들과의 교류의 장을 마련합니다. 서재는 단순히 책의 공간이 아니라, 선생님의 삶과 지식, 그리고 사람과의 만남이 어우러지는 숨 쉬는 공간인 것입니다. 하루에 불과한 일반 공개에도 끊임없이 찾아오는 사람들은 이 공간의 가치를, 책과 사람을 향한 선생님의 진심을 보여줍니다.

    손님방과 마루: 손님들에게 마음껏 내어주는 따뜻한 공간

    여백서원은 선생님의 개인 공간만이 아닙니다. 손님들에게 마음껏 내어주는 따뜻한 공간, 손님방과 마루가 그 증거입니다. 넓고 시원한 마루는 세상을 눈으로 품는 듯한 명당자리로, 비가 내리는 날이면 절로 시인이 될 것 같은 운치를 자랑합니다. 선생님은 이곳에서 손님들과 차 모임, 독서 모임 등을 가지며 교류합니다. 특히 손님방은 옆방이 선생님 방인, 선생님의 따스한 배려가 돋보이는 공간입니다. 하지만 선생님은 이러한 공간을 손님에게 온전히 양보하며, 자신은 좁은 노비방에서 주경야독하며 연구에 매진합니다. 손님방은 단순한 숙소가 아닌, 여백서원의 정신, 나눔과 배려의 정신을 보여주는 상징적인 공간입니다. 선생님의 헌신과 봉사는 이 공간에서 더욱 빛을 발합니다.

    작은 노비방: 0.8평의 연구 공간과 삶의 균형

    0.8평 남짓한 선생님의 방은, 여백서원의 다른 공간들과는 대조적인 모습입니다. 딸의 초등학교 책상과 이불 한 장이 전부인 이 좁은 공간은, 세상에 헌신하는 선생님의 삶의 균형을 보여주는 상징적인 공간입니다. 좁고, 다소 지저분해 보이는 이 공간은 선생님의 겸손함과 연구에 대한 헌신을 여실히 보여줍니다. 선생님은 이 작은 방에서 밤늦도록 연구하며, 자신의 삶을 책과 사람에게 헌신합니다. 이 공간은 0.8평이라는 물리적인 크기를 넘어, 선생님의 삶의 가치관과 철학을 보여주는 상징적인 의미를 지닙니다. 좁은 공간 속에서도 세상을 향한 넓은 마음과 끊임없는 열정을 엿볼 수 있는 귀한 공간이 바로 선생님의 노비방입니다. 이 작은 방은 선생님의 삶의 방식을 가장 잘 보여주는 결정적인 증거이기도 합니다.

    나눔과 공유의 공간: 여백서원의 확장과 의미

    외국 학자와 예술가를 위한 숙소: 1인용 한옥과 따뜻한 마음

    여백서원은 단순한 서원을 넘어, 나눔과 공유의 공간으로 확장되어 왔습니다. 그 중심에는 외국 학자와 예술가들을 위한 1인용 한옥 숙소가 있습니다. 전영애 선생님은 자신의 협소한 공간과는 대조적으로, 정성스럽게 지은 이 숙소를 통해 외국에서 어렵게 공부하는 이들을 따뜻하게 품어주고자 했습니다. 이는 선생님이 젊은 시절 유학 생활 중 느꼈던 어려움과 감사함을 기억하며 만들어낸 공간입니다. 숙소에 머무는 이들에게는 방명록 작성이라는 작은 의무가 있지만, 그것은 단순한 절차가 아닌, 서로의 마음을 나누는 소중한 기록이 되고 있습니다. 성급 호텔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인간적인 정과 따뜻한 마음이 깃든 이 공간은 여백서원의 확장된 의미를 보여주는 상징적인 공간이라 할 수 있습니다. 선생님의 헌신적인 마음은 방명록에 쌓여가는 수많은 이야기들 속에 고스란히 담겨 있으며, 이곳을 거쳐간 이들은 다시금 다른 이들에게 따스함을 전하는 연결고리가 되어 여백서원의 정신을 이어갑니다.

    파우스트 극장: 모두를 위한 열린 무대와 용기의 의미

    여백서원에는 독특한 공간인 ‘파우스트 극장’이 있습니다. 한옥에서 쉽게 볼 수 없는 이 공간은, 누구에게나 열린 무대입니다. 자격 조건은 단 하나, 용기입니다. 무엇이든 자랑할 만한 것이 있다면, 나이와 상관없이, 어린아이부터 어른까지 누구든 이 무대에 설 수 있습니다. 아이들은 공연 도중 흥분을 참지 못하고 무대 위로 뛰어올라 태권도 시범을 보이기도 합니다. 이러한 자유로움과 열정은 여백서원이 추구하는 개방성과 공유의 정신을 잘 보여줍니다. 파우스트 극장은 단순한 공연장이 아니라, 자신의 이야기를 나누고, 꿈을 펼치고, 용기를 내는 공간입니다. 그 기원 또한 특별합니다. 독일에서의 강연 후, 생면부지의 독일인으로부터 받은 돈으로 시작된 괴테 마을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작은 씨앗처럼 시작된 이 공간은 많은 사람들의 도움과 참여로 완성되었다는 점에서 그 의미가 더욱 깊습니다.

    괴테 마을 프로젝트: 기적적인 기부와 공동체의 힘

    파우스트 극장의 건립은 ‘괴테 마을’ 프로젝트의 시작을 알리는 기적적인 사건이었습니다. 독일에서의 강연을 계기로 시작된 이 프로젝트는 생면부지의 독일인으로부터의 뜻밖의 기부금으로 탄생했습니다. 하지만 그 기적은 거기서 그치지 않았습니다. 서원 동장에는 사람 이름이 아닌, ‘건축의 이해’와 같은 책 제목들이 기부자 명단으로 기록되기 시작했습니다. 알고 보니 20여 년 전 제자가 책을 읽고 독후감을 블로그에 올리고, 책값만큼 기부하는 것이었습니다. 이러한 기적적인 기부와 공동체의 참여는 괴테 마을 프로젝트를 현실로 만들었습니다. 괴테 하우스를 본떠 만든 ‘젊은 괴테의 집’은 그 시작을 알리는 상징적인 건물입니다. 이 프로젝트는 단순한 건축 사업이 아니라, 나눔과 공유를 통해 함께 만들어가는 공동체의 힘을 보여주는 감동적인 이야기입니다. 이는 전영애 선생님의 삶과 철학, 그리고 여백서원이 추구하는 가치를 가장 잘 보여주는 사례라 할 수 있습니다.

    삶의 여백과 균형: 끊임없는 노력과 희생의 이야기

    주경야독의 삶: 낮에는 노비, 밤에는 학자로서의 삶

    경상도 산골에서 13살에 서울로 유학 온 전영애 씨는 끊임없는 학문에 대한 열정으로 가득 찬 삶을 살았습니다. 어머니의 기대와 자신의 간절한 소망을 이루기 위해 주경야독의 삶을 선택했죠. 서울대를 수석 졸업한 후에도 결혼과 살림 대신 학문의 길을 택한 그녀의 삶은 당시 사회 분위기와는 크게 대비됩니다. 전기가 들어오지 않는 한겨울 추위 속에서도, 낡은 책상과 의자에 앉아 밤늦도록 책을 읽고 글을 쓰는 그녀의 모습은 학문에 대한 뜨거운 열정을 보여줍니다. 그녀에게 주어진 공간은 겨우 책상 하나 놓을 만한 공간이었지만, 그곳은 어머니도, 아내도, 자식도 아닌, 오롯이 ‘공부하고 싶은 사람 전영애’로 존재할 수 있는 유일한 안식처였습니다. 이러한 헌신적인 노력과 희생은 세계적인 괴테 연구가로서의 성공적인 삶으로 이어졌습니다. 그녀의 삶은 학문에 대한 열정과 끈기가 얼마나 큰 가치를 지니는지 보여주는 생생한 증거입니다.

    끊임없이 찾아오는 손님들과 봉사: 힘들지만 행복한 삶

    전영애 씨가 1200평의 땅을 얻어 짓게 된 ‘여백서원’은 단순한 건물이 아닌, 그녀의 삶의 철학과 봉사의 정신이 담긴 공간입니다. ‘개집만 한 방’이면 충분하다던 그녀의 소박한 바람과는 달리, 여백서원은 많은 책들과 사람들로 가득 찬 넓은 공간이 되었습니다. 하루에 단 한 번의 공개에도 끊임없이 찾아오는 손님들을 맞이하며 그녀는 마치 7인분의 노비처럼 쉴 새 없이 움직입니다. 쓸고 닦고, 잡초를 뽑고, 손님을 맞이하는 일상은 그녀에게 힘겨운 노동이지만, 그 속에서 그녀는 행복을 느낍니다. 이는 단순히 공간을 제공하는 것 이상으로, 배움을 갈망하는 이들과 학문을 나누고, 따뜻한 마음으로 그들을 품어주는 헌신적인 봉사의 삶이기 때문입니다. 특히 외국에서 온 학자와 예술가들을 위한 따뜻한 숙소는 그녀의 넓은 마음과 과거 유학 시절 받았던 도움에 대한 감사를 보여줍니다. 방명록에 적힌 수많은 이야기들은 그녀의 삶이 얼마나 많은 사람들에게 감동과 영감을 주었는지 보여주는 증거입니다.

    개인적인 공간과 공유의 공간 사이에서의 균형: 0.8평의 방과 넓은 마음

    여백서원의 가장 놀라운 점은 전영애 씨의 개인적인 공간과 공유의 공간 사이의 균형입니다. 그녀의 방은 고작 0.8평 남짓, 딸의 초등학교 책상과 이불 한 채가 전부입니다. 좁고 불편한 공간이지만, 그녀에게는 소중한 학문의 공간이자, 세상과의 경계를 넘어선 자유로운 사색의 공간입니다. 반면, 서원의 나머지 공간들은 책과 사람들로 가득 차 있습니다. 넓은 서재, 손님들을 위한 방, 괴테를 기리는 공간, 예술가들을 위한 전시 공간, 심지어 어린이들을 위한 파우스트 극장까지, 여백서원은 그녀의 넓은 마음만큼이나 다채롭고 풍성한 공간입니다. 0.8평의 작은 방은 그녀의 삶의 균형을 상징하는 강력한 메타포입니다. 개인적인 삶의 소박함과 타인을 위한 헌신적인 봉사의 삶이 아름다운 조화를 이루고 있음을 보여줍니다. 이러한 균형은 그녀의 삶을 더욱 풍요롭고 의미 있게 만들어줍니다. 단순히 공간의 크기가 아닌, 그 공간이 지닌 의미와 그 안에 담긴 마음의 크기가 진정한 가치임을 여백서원은 보여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