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기업 퇴사 후 겪은 좌절과 방황, 세계여행, 워킹홀리데이, 공무원 시험 도전까지! 준비 없는 퇴사의 현실적인 경험과 깨달음을 통해 퇴사를 고민하는 당신에게 꼭 필요한 조언을 전합니다. #퇴사 #방황 #자기계발 #현실자각 #준비된퇴사
대기업 퇴사의 순간: 빛나는 꿈과 숨겨진 어둠
대기업 ‘뽕’에 취한 28세, 거만함과 자만심의 시작
28살에 대기업에 입사한 저는, 400만원의 월급과 연초 1500~2000만원에 달하는 성과급에 취했습니다. ‘대기업 뽕’이라고 할까요? 어깨에 뽕이 가득 차 친구들을 무시하고, 큰소리치며 거만해졌습니다. 주변 사람들은 저를 “구급 공무원 시험 금방 붙을 거다”라며 칭찬했고, 저는 마치 인생의 정점에 선 것처럼 느꼈습니다. 어린 시절의 철없는 자신감과 근자감이 폭발했죠. 하지만 그 빛나는 순간은 곧 어둠으로 변하기 시작했습니다. 1년 6개월이라는 짧은 시간 동안 느꼈던 희열과 만족감은, 회사 생활의 어두운 면을 마주하는 순간 순식간에 덧없는 환상으로 변했습니다. 이러한 자만과 거만함은 제가 객관적인 현실을 직시하지 못하고, 앞으로 다가올 어려움을 제대로 예측하지 못하게 만든 중요한 원인이 되었습니다. 이후 겪게 되는 좌절과 방황은 바로 이러한 ‘대기업 뽕’에서 시작되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직무 불만족, 과도한 회식과 야근, 그리고 쌓여가는 스트레스
대기업 생활의 화려함 뒤에는 숨겨진 고통이 있었습니다. 기본적으로 제 직무는 저에게 맞지 않았습니다. 일주일에 두세 번씩 이어지는 회식, 회식이 없는 날이면 야근은 필수였죠. 막내였던 저는 매일 아침 회의 준비와 잔무에 시달렸습니다. 처음에는 대기업 월급을 받으니 버텨야 한다는 생각으로 견뎠습니다. 하지만 윗선 두 분이 몇 달 간격으로 다른 부서, 본사로 전배되면서, 그들의 업무까지 제게 떠넘겨졌습니다. 강했던 인정욕구와 성과에 대한 자신감은 저를 더욱 깊은 수렁으로 몰아넣었습니다. 선배들의 업무를 처리하며 열심히 일했지만, 결국 상사까지 해외 지사로 떠나면서 모든 업무가 저에게 전가되었습니다. 쉽게 해결할 수 있었을 문제들을 혼자 짊어지고, 주변에 도움을 요청하지 못하는 제 성격 때문에 문제는 더욱 악화되었습니다. 아무리 노력해도 해결할 수 없는 상황에 놓인 저는 점점 회사에 가는 것이 두려워졌습니다.
업무 과부하와 극심한 스트레스로 인한 정신적, 육체적 붕괴
결국, 저는 극심한 스트레스에 시달렸습니다. 일적으로는 회사에서 압박감에 시달렸고, 퇴근 후에는 주변 사람들에게 화를 내고 난폭 운전까지 하는 등, 정신적으로나 육체적으로 무너져 가고 있었습니다. 회사라는 틀 안에서 억눌렀던 감정들이 폭발한 것이죠. 그때 저는 스스로에게 질문했습니다. “나는 신체적으로도, 정신적으로도 무너져 가고 있다. 이렇게 계속 다닌다면 더 나빠질 뿐이다.”라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자신의 몸과 마음이 극도로 피폐해진 상태를 객관적으로 인지하고, 더 이상 회사 생활을 지속할 수 없다는 판단을 내리게 된 것입니다. 이러한 깨달음이 퇴사라는 결정으로 이어지게 되었습니다. 결국, 저는 퇴사를 결심했고, 이후의 긴 방황의 시간을 맞이하게 됩니다.
퇴사 후 방황: 막연한 꿈과 현실의 간극
막연한 이민의 꿈과 7개월간의 세계여행, 낮아진 자존감 회복의 시도
대기업 생활 1년 6개월 만에 퇴사했습니다. 높은 월급과 성과급 덕분에 ‘대기업 뽕’에 취해 거만해지고, 내 인생이 펴졌다고 착각했던 시절이었습니다. 친구들을 무시하고 큰소리치는 제 모습은 스스로 돌아볼 때 부끄러운 기억입니다. 하지만 직무 불만족, 과도한 회식과 야근, 상사들의 잦은 전배로 인한 업무 과부하 등 여러 복합적인 이유로 회사 생활은 점점 힘들어졌습니다. 결국, 극심한 스트레스와 불안감에 시달리며 퇴사를 결심했습니다. 20대 초 뉴질랜드 워킹홀리데이에서 얻었던 긍정적 기억이 떠올랐고, 막연하게 이민을 꿈꾸며 퇴사를 결정했습니다. 이민 준비를 어느 정도 해놓은 상태였지만, 막상 퇴사 후에는 여유롭고 풍족한 시간과 돈 앞에서 새로운 생각이 들었습니다. ‘지금 아니면 언제 할까?’ 하는 충동적인 마음에 7개월간의 세계여행을 떠났습니다. 회사 생활의 스트레스를 보상받고 낮아진 자존감을 회복하고자 했습니다. 자유로운 여행 생활 속에서 스스로에게 도취되어 행복하다고 느꼈지만, 그것은 일종의 자기기만이었습니다. SNS에 여행 사진을 올리며 부러움과 칭찬을 받는 것을 통해 멋진 삶을 살고 있다는 허영심에 빠져들었습니다. 하지만 이민이라는 목표는 점점 멀어져 가고 있었고, 저는 그 사실을 자각하지 못했습니다.
세계여행 후 깨달은 허황된 자아도취와 현실 자각의 부재
세계여행 후 귀국했을 때는 준비했던 돈의 절반이 사라져 있었습니다. 이민 계획에 차질이 생긴 상황에서, 저는 호주 워킹홀리데이를 선택했습니다. 돈을 벌고 영어 공부도 할 수 있을 거라는 생각 때문이었습니다. 하지만 현실은 녹록지 않았습니다. 현지 사람들이 기피하는 육가공 공장, 돌 공장, 치킨 공장 등 힘든 육체노동을 하며 지냈습니다. 인종 차별적인 시선과 무시 속에서 일하는 동안 ‘내가 지금 이 일을 해야 하는 게 맞을까?’ 하는 현타가 왔습니다. 하지만 이민이라는 꿈을 포기하지 못했기에 인정받기 위해 더 열심히 일했습니다. 그러나 힘든 노동으로 인해 건강이 악화되었고, 오른쪽 귀에 이명까지 생겼습니다. 좋게만 보였던 해외 생활은 나이가 들고 장기간 거주해야 한다는 관점에서 보니 단점들이 더욱 크게 다가왔습니다. 외로움과 향수병에 시달리다 결국 한국으로 돌아오게 되었습니다. 이민이라는 꿈을 포기하고 현실과 타협한 선택이었습니다. 자신감은 떨어졌고, 주변 사람들과 소통을 피하며 공무원 시험 준비에만 매달렸습니다.
이민 계획 실패와 돈의 소진, 호주 워킹홀리데이 선택의 이유
33살에 시작한 공무원 시험 준비는 예상보다 훨씬 어려웠습니다. 대기업 출신이라는 배경과 주변의 긍정적인 예상과 달리, 넓은 시험 범위와 시간 제한 속에서 저는 좌절을 겪었습니다. 두 번의 낙방 후 극심한 슬럼프에 빠졌고, 6개월 동안 은둔형 외톨이 생활을 했습니다. 스마트폰에 매달리며 현실 도피를 했고, 스스로의 능력 부족을 자책하며 불안감에 휩싸였습니다. 하지만 유튜브에서 퇴사 후 실패를 겪고도 다시 일어선 한 사람의 영상을 보고 큰 위로를 받았습니다. 마지막 시험을 4개월 앞두고 다시 공부를 시작하여 시험에 응시했습니다. 돌이켜보면, 퇴사 후 6년간의 방황은 ‘대기업 뽕’으로 인한 자만심과 자기객관화 부족, 막연한 꿈에 대한 간절함과 동기 부여의 부재, 그리고 실패를 반성하고 돌아보기보다 현실을 핑계 삼아 도피하고 자기 합리화를 하는 악순환 때문이었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그 6년간의 시간들도 저에게 의미 있는 경험이었다고 생각합니다. 만약 다시 퇴사 직전으로 돌아간다면, 철저한 준비를 하고 퇴사할 것입니다. 퇴사 후 다음 날부터 무엇을 할지 구체적인 계획을 세우고, 막연한 꿈이 아닌 현실적인 목표를 설정할 것입니다. 퇴사를 고민하는 분들에게는 충분한 준비와 자기 객관화, 그리고 경제적 안정성 확보를 조언하고 싶습니다. 또한, 회사 내 문제 해결을 위한 노력을 먼저 해보고, 퇴사가 정말 최선의 선택인지 신중하게 고민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하고 싶습니다.
호주 워킹홀리데이와 귀국: 꿈의 좌절과 현실 직면
힘든 노동과 인종차별, 건강 악화와 향수병으로 인한 귀국 결정
대기업 퇴사 후, 막연한 이민의 꿈을 안고 뉴질랜드 이민을 준비했지만, 충동적으로 시작한 7개월간의 세계여행으로 이민 자금의 절반을 소진하게 되었습니다. 이민 계획에 차질이 생기자, 돈을 벌고 영어 공부를 할 겸 호주 워킹홀리데이를 선택했습니다. 그러나 현실은 녹록지 않았습니다. 호주에서의 삶은 육체적으로 힘든 노동의 연속이었습니다. 육가공 공장, 돌 공장, 냉동 창고 등 현지인들이 기피하는 힘든 일들을 주로 맡게 되면서 신체적인 고통은 점점 심해졌습니다. 더욱이 예상치 못한 인종차별적인 경험들은 상처를 더했습니다. 처음에는 만만하게 보고 무시하거나 심지어 욕설을 퍼붓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해외에서 살고 싶다는 꿈을 이루기 위해 이러한 어려움들을 견뎌내려 애썼지만, 결국 오른쪽 귀에 이명이 생길 정도로 건강이 악화되었습니다. 몸이 힘들어지면서 마음까지 약해지고, 처음에는 좋게만 보였던 해외 생활의 단점들이 눈에 띄기 시작했습니다. 외로움과 힘든 환경 속에서 한국에 있는 가족과 친구들이 그리워졌고, 결국 향수병을 이기지 못하고 한국으로 돌아오게 되었습니다. 꿈에 그리던 이민 생활은 현실의 벽에 부딪혀 좌절하고 말았습니다.
주변의 기대와 달리 좌절한 이민의 꿈, 33세 공무원 시험 준비 시작
호주에서 돌아온 후, 이민이라는 꿈을 포기하고 현실과 타협하며 자신감은 많이 떨어진 상태에서 33세의 나이에 공무원 시험 준비를 시작했습니다. 대기업 출신이라는 배경과 주변의 긍정적인 반응 때문에 처음에는 쉽게 합격할 수 있을 거라는 막연한 기대감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현실은 기대와는 너무 달랐습니다. 시험 범위는 넓었고, 지역적인 문제들까지 다 외워야 하는 등 예상보다 훨씬 어려운 시험이었습니다. 단순히 지식 암기만으로는 절대 합격할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빠른 문제풀이 능력까지 갖춰야 한다는 압박감에 시달리며 첫 시험에서 낙방했습니다. 두 번째 시험에서도 실패하자 멘붕에 빠졌고, 자신감과 자존감은 바닥으로 떨어졌습니다. 이민 실패 후, 현실과 타협하며 선택한 공무원 시험이었기에 다른 수험생들에 비해 간절함과 의지가 부족했고, 힘든 시기를 버틸 수 있는 동기 부여도 턱없이 부족했습니다. 이러한 현실적인 문제점들을 깨닫게 된 것이 두 번째 시험 낙방 이후였습니다.
공무원 시험의 어려움과 2년 반 동안의 좌절, 슬럼프 극복과 마지막 시험
두 번째 시험 실패 후, 큰 슬럼프를 겪었습니다. 공부 의욕은 사라졌고, 책상에 앉아 있어도 머릿속에는 아무것도 들어오지 않았습니다. 잠시 쉬면서 머리를 정리하고 다시 시작하겠다는 생각으로 휴식을 취했지만, 그 휴식은 어느새 6개월이라는 긴 시간으로 이어졌습니다. 집 밖으로 나가지 않고 방에서 스마트폰만 보며 은둔형 외톨이 생활을 했습니다. 현실 도피의 수단으로 스마트폰에 매달렸고, 자신의 능력 부족과 미래에 대한 불안감, 과거 선택에 대한 후회와 자책감에 시달리며 심각한 부정적인 생각에 갇혀 있었습니다. 그러던 중 유튜브에서 퇴사 후 여러 도전에 실패하고 우울증을 겪었지만, 다시 일어서려는 사람의 영상을 보게 되었습니다. 그 영상과 댓글들은 저에게 큰 위로와 공감을 주었고, 다시 세상 밖으로 나가야겠다는 용기를 심어주었습니다. 남은 마지막 시험을 향해 후회 없이 최선을 다해 공부했습니다. 6개월간의 공백기를 채우기 위해 마지막 4개월 동안 정말 열심히 노력했습니다. 결과는 합격이었고, 비록 더 일찍 노력했다면 더 좋은 결과를 얻었을 수도 있지만, 마지막까지 최선을 다했기에 후회는 없습니다. 이 경험을 통해 저는 ‘현실 자각’과 ‘철저한 준비’의 중요성을 뼈저리게 느끼게 되었습니다.